고문헌 주방문의 술 복원 및 재현에 대한 내 생각
우리 선조들이 글로 남긴 고문헌으로 전래되는 많은 주방문들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필두로 우리 민족이 기록을 중요하게 여기는 민족이다보니 그 덕을 톡톡히 보는 것 같다.
고문헌 주방문에는 석탄주, 청명주, 부의주 등 여러 술이 여러 문헌을 통해 전래되었다.
그 술들은 재료의 양을 정하는 주방문과 술을 빚는 공정을 간략하게 몇 마디 문장으로 전달하고 있다.
그런 고문헌의 주방문들을 연구하여 공개해주신 김재형님 덕분이 우리는 손쉽게 그 고문헌을 아래 URL에서 간접체험할 수 있다.
또한, 김재형님의 블로그에서는 전통주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들도 있다.
https://blog.naver.com/korean-sool
내가 생각하는 고문헌 주방문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도량형이다.
'홉/되/말'은 그나마 조선시대의 도량형제에 대한 연구자료가 있기 때문에 참조하면 되긴 하지만, '식기/사발/주발/바리/탕기/복자/대야/병/동이/양푼' 등 별의 별 단위가 다 튀어나온다.
이런 단위들은 그 당시 주방문을 작성한 사람이 쓰던 용기를 지칭하는 용어일텐데, 문제는 그 당시 그가 쓴 용기의 부피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사전을 찾아보면, 사발은 도자기로 만든 밥그릇이고 주발은 놋쇠로 만든 밥그릇이다.
조선시대 수백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 집집마다 밥그릇 사이즈가 규격화되었을리는 만무할테다.
어느 집의 밥그릇은 좀 더 크고, 어느 집의 밥그릇은 좀 더 작은 차이가 있을텐데 지금에 와서 그 제각각인 밥그릇의 용량을 어찌 알 수 있을까.
난 아직 고전 주방문 재현을 시도해본 적이 없다.
아직 전통주를 빚는데 있어 통찰력이 부족하다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가양주에 입문한 사람들 중에는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본답시고 빚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사람들이 고문헌 주방문의 술을 빚어보고 공부하는 것 자체는 매우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건 바로 고문헌 주방문에 대한 정보의 오염이다.
석탄주를 예로 들어보자.
한국술고문헌DB에서 석탄주를 검색해보면 술방문의 석탄향을 참고하라고 나온다.
그리고, 석탄향을 검색하면 총 15가지 문헌으로 전래된 석탄향 주방문이 나온다.
이렇게 조회된 석탄향 주방문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주방문.1] 술방문 석탄향
밑술(죽) = 멥쌀(2되), 물(10되), 누룩(1되)
덧술(고두밥) = 찹쌀(10되)
하지만, 고문헌에 따라 다른 단위를 쓰거나 재료의 비율이 다른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고문헌으로 전래된 술을 언급할 땐 어느 문헌에서 전래된 어느 주방문인지를 명확하게 언급해야 한다 생각한다.
게다가 요즘 사람들은 그런 술을 빚으면서 부피단위인 주방문을 무게단위로 치환할 때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석탄주 주방문도 분명 '되'라는 부피 단위로 계량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되'라는 단위에 대해서는 국립농업과학원이 고문헌의 도량형에 대해 연구하여 발표한 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https://koreanfood.rda.go.kr/kfi/alcoholData/data1?menuId=PS03556
고문헌 복원에 사용된 조선전기 양기의 용적 중 1되는 572.675mL라 하였고, 1홉은 1되의 1/10, 1말은 10되다.
즉, 고문헌의 '1되'라는 단위는 부피 단위이며, 계량컵으로 계량하면 어렵지 않게 그 당시의 단위를 복원할 수 있다.
홉/되/말 외 다른 단위들도 해석하고 있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 처럼 집집마다 용기가 달랐을테니 모든 주방문을 이와 같이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술을 빚을 땐 계량컵으로 부피 계량을 하기 보다 저울로 무게 계량을 하는 편이 더 편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10되를 계량하기 위해 1말 계량컵이 없다면 1되 계량컵으로 10번 계량해야 하지만, 저울로 계량할 땐 그냥 한번에 계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문헌 전통주 주방문을 부피 단위에서 무게 단위로 바꿔 빚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단순히 '되'라는 단위를 'kg'으로 치환하기도 한다.
즉, 석탄주의 재료 단위를 다음과 같이 치환하는 경우다.
[주방문.2] 술방문 석탄향의 '되'를 'kg'으로 바꾼 주방문
밑술(죽) = 멥쌀(2kg), 물(10kg), 누룩(1kg)
덧술(고두밥) = 찹쌀(10kg)
이 술은 석탄주의 부피 계량을 무게 계량으로 변형한 술이다.
하지만, 모든 재료는 비중과 입도가 다르기 때문에 부피와 중량의 비율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위와 같이 단위만 바꾼다고 제대로 변환될 수는 없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표와 같이 국립농업과학원에서 발표한 자료를 참고하면 된다.
게다가 갓 도정한 곡물과 보관을 어떻게 얼마나 오래 했는지에 따라 무게가 달라지기도 할테고, 누룩의 경우 누룩을 얼마나 잘게 분쇄했는지 그 입도에 따라서도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
국립농업과학원의 도량형 해석을 참고하여 석탄주 주방문을 무게 단위로 치환하면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주방문.3] 술방문 석탄향의 '되'를 국립농업과학원의 해석을 참고하여 무게 단위로 치환한 주방문
밑술(죽) = 멥쌀(1,060g), 물(5,700g), 누룩(400g)
덧술(고두밥) = 찹쌀(5,400g)
위 주방문을 찹쌀 10kg가 되도록 비율대로 양을 늘리면 다음과 같다.
[주방문.4] [주방문.3]을 찹쌀 10kg가 되도록 비율대로 양을 늘린 주방문
밑술(죽) = 멥쌀(1,963g), 물(10,556g), 누룩(741g)
덧술(고두밥) = 찹쌀(10,000g)
즉, 단순히 '되'를 'kg'으로만 바꾼 주방문과는 차이가 있다.
이 때 이 주방문의 재료들은 주방문 작성자가 썼던 그 시절의 재료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현재 이 술을 빚는 사람은 이를 고려하여 양을 가감할 수 있을테다.
'되'를 'kg'으로 바꿀 때 가장 큰 오차가 무게 대비 부피가 큰 누룩에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누룩은 요즘 판매되고 있는 공장형 누룩이 가진 300SP 남짓 밖에 되지 않는 누룩에 비해 당화력이 훨씬 높았다고들 하더라. (이 정보에 대한 출처가 기억나지 않아 출처를 밝히지는 못했다.)
그러니 300SP 남짓의 누룩을 쓰려면 좀 많이 써야할테니 이 또한 재해석 과정에서 옳은 방향이라 본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누룩 중에도 당화력이 600SP 이상 되는 누룩들도 있으니 단순히 누룩을 주방문의 무게대로 쓰기 보다 누룩에 따라 양을 조절해야 할테다.
게다가 누룩마다 함유된 효모의 종류와 양도 다를테니 술 빚을 때 쓰려는 누룩의 특성에 따라 양을 조절해야할테다.
그렇기에 '되'를 'kg'으로 바꾼 주방문 정도는 300SP 남짓의 누룩을 쓴다는 가정하에 그냥 소소한 오차만 있을 뿐 계량의 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해 약간의 오차는 감내하는 수준이라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때 이 오차를 받아들이고 말고는 각자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할 일이지만, [주방문.1]과 [주방문2]가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각자 나름대로 해석하거나 누군가 해석한 다양한 주방문들을 '석탄주'라 하며 다양한 석탄주 주방문이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즉, 고문헌 주방문을 다양하게 재해석한 주방문을 그 고문헌 주방문인양 설명하는 자료가 많이 양산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재료의 비율이 아예 다르거나, 재료의 가공법이 아예 다르거나, 주요 공정이 아예 다른 술을 고전 주방문의 술이라 하는 자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정보의 오염이다.
오염된 정보가 많을수록 그런 정보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어느 정보가 제대로 된 정보인지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여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오염된 정보를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하게 된다.
고문헌 주방문을 이제 와서 완벽하게 복원하여 술을 빚는 것이 가능한가?
누군가 고문헌 주방문을 복원했다 주장한들 그 술이 고문헌 주방문의 술이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나?
고문헌 주방문을 참고하여 술을 빚었다 한들 그건 술 빚는 이가 재해석한 결과물일 뿐이지 않나?
어느 고문헌의 어느 주방문을 참고하여 나름대로 재해석한 술이라고 하면 될텐데 말야.
이 글을 쓴김에 주방문 도량형 및 비율 변환 시트도 만들어봤다. (내가 쓰려고 만듦)
공유 설정 해뒀으니 사용해보고 싶은 사람은 다운로드 받아 쓰면 되며, 문서의 저작권은 문서에 기재해뒀다.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jbxF48UOZjVYgMsUthR3BCmBoLOLENyOJj93cCs1ur8/edit?usp=sharing
아래 그림은 시트에서 한국술고문헌DB의 술방문 석탄향을 참고하여 주방문을 부피 계량에서 무게 계량으로 바꾸고, 쌀의 양을 12kg로 조정하고, 300SP 남짓의 시판누룩을 쓸 때를 대비해 누룩 비율을 쌀 무게 대비 6.19%에서 8%로 늘린 예다.
시트의 오류 제보 또는 문의는 다음 3가지 채널로 받습니다. (단, 실시간 소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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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조선시대 도량형과 1되 당 재료별 무게는 국립농업과학원의 자료를 참고했으니, 이에 대한 문의는 아래 링크의 국립농업과학원에 직접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https://koreanfood.rda.go.kr/kfi/alcoholData/data1?menuId=PS03556